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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7. 02:14 - vedCAT

[150806] 학과 용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구나. 감정은 늪과 같아서, 그저 질은 땅인 줄 알고 무심코 발을 딛었다 빠지고 나서야 늪임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보면 헤어나오기엔 너무 늦어 있지. 신경쓰지 말거라. 오래도록 잠겨있으면 언젠가 땅은 굳고 나는 시간의 힘을 빌어 평소처럼 살아갈 거란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모든 이들의 떠나는 길을 뒤에서 지켜보는 자, 결코 누군가의 옆이나 앞에서 걸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느니라. 하지만 그런 감정은 벽을 쌓는다 해서 넘어오지 못하는 게 아니지, 그렇지 않느냐.

저울 위를 걷는 드루이드로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네게는 오직, 오직 행복만을 빌겠노라. 앞으로는 불행도 슬픔도 아픔도 죄책감도 미련도 그 어떤 아픈 감정도 감히 너를 범접하지 못하기를. 그저 너 있는 곳, 그곳에서 영원토록, 네가 보여주었던 그 미소를 안은 채로 있어주기를.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이라도 좋으니 너만은 행복하기를.

끝없이 목이 마른 감각은, 늘 그래왔으니, 메마른 사막 위에 타는 햇빛을 더 더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단다. 그런 곳에서는 누군가가 주는 물 한 방울이 더 괴로울 때도 있지. 더 원하게 되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목마른 채로 있는 게 낫느니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궁금해한다. 왜 네가 나에게 학을 접어주었는지. ..그래, 아마 아무 의미 없었겠지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네게 그저 불쾌한 기억 하나 얹어주는 일이 될까 수없이 저어하였으나 망설임과 고민보다 내 이기심이 깊었을 따름이니, 날 미워하거라. 이해는 바라지 않는다.

되도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서신이 전해지기를 빈다.

잘, 가거라.

(마지막 문장에는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한번에 쓴 흔적. 서명은 없다.)





호란은, 잉크와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로 엉망이 된 편지..의 초고 비슷한 것을 오래된 종이 더미 속에 슬그머니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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